▲ 남편을 잃은 아내, 그리고 그런 아내를 지켜보는 유령
<어 고스트 스토리>의 이야기는 낯설다. 대사도 그리 없고, 모든 것을 그냥 관망하기만 한다. 더구나 유령과 함께라면 우리들 조차 유령이 된 듯 한 오싹함을 느끼게 된다. 이 영화는 공포 영화의 문법처럼 이야기의 포문을 연다.
당신이 잠에서 깰 때마다, 문은 닫혀있다
라는 버지니아 울프의 <흉가> 속 문장을 인용하는 이야기는 이윽고 난데 없이 울리는 피아노의 소리로 기이함을 부각시키더니, 남편이 죽고, 그 다음 남편이 유령이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 모든 것은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굉장히 기이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이것은 분명 공포 영화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즈음, 더 이상의 이야기를 보여주지 않는 영화는 그 속에서 다른 것을 발견하라고 말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저 유령처럼 지켜볼 뿐이고, 유령처럼 아무런 존재감이 없다. 간간이 보여지는 폴터가이스트(각주)의 모습은 역시 공포 영화였나? 싶은 생각이 든다. 정말 영화는 니콜 키드먼이 주연을 맡았던 < 2디 아더스 (2001)>의 그것을 떠올릴 만큼 굉장히 이상하다. 그러면 그럴수록 이것에 대한 이유를 찾고 싶지만, 그럴수록 영화는 "지켜보라"는 행위만 되풀이 할 뿐이다.
그러던 이야기는 중반을 즈음하여 파티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그 속에서 흉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을 통해서 하나의 힌트를 던지기 시작한다. 잘난 척을 하듯 일장연설을 늘어놓는 사내와 그의 말 속에서 꺼내지는 이야기는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는 속담의 그것처럼 사람이 남겨야 할 것에 대한 주장을 시작한다. 그러면서 우리는 과연 무엇을 남길 것이며, 남겨진 자는 우리의 무엇을 기억해 줄 것인가에 대한 질문을 꺼내게 되는 이야기. 이쯤 되자 영화가 던지고자 하는 바가 조금은 뚜렷해진다.
<어 고스트 스토리>는 유령의 이야기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지만, 그 유령의 삶을 지켜보는 우리들은 우리가 유령이었음을 발견한다. 우리가 유령이 되어 극 중의 유령을 지켜보는 이야기. 그리고 유령은 공포영화인 척을 하며 인간사를 되풀이하게 된다. 누군가 태어났고, 그 자리에서 말뚝을 박고 집을 지었으며, 그 집에 누군가 새로이 이사를 오게 되지만, 어떠한 일이 있어 떠나야만 하는 삶. 인간의 축소판을 들여다보는 듯한 영화의 이야기는 그렇게 삶이란 이름을 남겨진 자들의 추억 속에 새겨 놓으려 한다. 우리는 합창 교향곡을 통해 베토벤을 영원히 기억하고, 누군가는 남겨 놓은 집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를 각인 시키기도 할 것이다. 그렇듯 인간은 자신의 삶을 누군가와 함께 영위하며, 누군가의 기억 속에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어 고스트 스토리>의 이야기 누군가의 기억 속에 살아가야 할 우리들의 이야기를 대신해서 늘어놓는다. 그것이 유령이란 이름으로 다가올 때 우리는 유령이 진짜 유령이 아님을 발견한다. 누군가에게는 베토벤이 되는 이름. 그리고 또 누군가에는 남편이고 아버지가 되어야 하는 이름. 그 이름의 존재를 우리는 유령이라 말을 한다. 때문에 유령의 이야기는 어느 누군가의 스토리가 된다.
▲ 우리의 추억 속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져 있을까?
마치며...
영화의 시작 부분 아내는 남편에게 하나의 이야기를 비밀스레 꺼내어 놓는다. 자신이 살 던 집을 떠나야 할 때 하는 행위들. 때론 어떠한 글귀를 적어 놓는다는 그녀의 이야기에는 그 집을 잊지 않고자 하는 기억을 남겨 놓는다는 말을 한다. 영화가 진행되는 동안 유령은 아내가 남겨 놓은 종이를 찾기 위해 계속해서 틈을 긁는 행위를 한다. 그리고 그 틈 속에서 종이를 발견한 유령은 그제야 모든 것을 내려놓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이미 영화의 서두를 통해서 거기에 적힌 내용을 짐작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굳이 그 내용을 몰라도, 영화가 그 글귀를 보여주지 않아도 우리는 알 수 있을 것이다.
남편이 말했던 추억, 그리고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 거기에는 아내도 있을 것이고, 유령은 그것을 보았다. 내가 떠난 후에도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그래서 이 영화가 소중하게 다가오는지도 모르겠다. 우리는 이 영화를 몰라도 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화를 기억할테깐 말이다. 단지 그것이면 족한 것이 아닐까?
IMDb 평점은 6.9점, 로튼 토마토 지수는 90%(신선 189, 진부 20)으로 매우 높은 점수를 보여준다. 영화의 해석은 각자의 몫이다. 단지 중요한 것은 우리가 이것을 기억하고 있다는 것이기에 이런 것들은 무의미 할지도 모른다. 다만 영화가 건드리는 작은 울림들은 커다란 의미로 우리 곁에 남아 있을 뿐이다.
- 관련리뷰 89회 아카데미에서 케이시 애플렉에게 남우 주연상을 안겨준 작품 : 치유의 과정보다 더 큰 먹먹함: 맨체스터 바이 더 씨 (Manchester by the Sea, 2016)
▲ 모든 것이 흩어진다고 해도, 당신은 나를 기억해줄까?
어 고스트 스토리 (A Ghost Story, 2017)
▥ 추천 : 멋지다. 아름답다. 심오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것을 몰라도 된다. 단지 기억할 뿐이니깐.
▥ 비추천 : 몰라도 되는 데, 왠지 알고 싶어질 때...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없음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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