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도 없다. 설명도 없다. 그냥 사방에서 쫓기는 기분으로 영화를 관람해야 한다.
우리 영화 <부산행>이 그랬다. 처음부터 이유도 없이 덤비는 좀비들, 그리고 기차 역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무작정 쫓겨야 하는 사람들. <레버너스>의 이야기가 꼭 그렇다. 여기에도 좀비 바이러스가 나타난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단지 조금 넓어진 무대와, 넓어진 무대 만큼 늘어난 좀비들의 숫자들이 관객들을 괴롭히고 있을 뿐이다.
<레버너스>의 이야기는 좀비 영화가 가지는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다.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자아를 잃고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게 된다는 것. 세상은 좀비 바이러스의 창궐로 멸망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 등. 전형적인 좀비 영화의 공식들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해서 일행 중 누군가가 좀비 바이러스에 걸리고, 그로 인해 일행이 큰 위기에 빠진다는 클리셰는 등장하지 않는다. 다만 끊임없이 무리를 공격하는 좀비들이 있었고, 이들로 인해 점점 줄어드는 주인공 일행의 험난한 과정만 있다. 그래서 <레버너스>의 이야기에 관객들은 더욱 빠져들 수 밖에 없다. <워킹데드> 류의 좀비 물을 좋아하시는 관객들이라면, 그 정도는 더욱 강해질 수 있다.
<레버너스>의 구성원들을 살펴보면, 집 안의 기대를 모았지만 지금은 그저 그런 탕아가 되어버린 보닌과 가난한 농장의 두 노인, 한때 단란한 가정을 꿈꿨지만, 지금은 쫓기는 신세가 되어버린 여인 등 모두 삶의 밑바닥 속에서 지금의 상황을 맞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의 삶처럼 되어 버린 현재의 모습은 그들에게 있어 낯선 모습이 아닐 수 있다. 영화 속 쓰레기들을 높이 쌓아올린 채 오지 않는 무언가를 바라는 좀비 들의 모습 역시 이러한 상황에 빗대어 본다면, 전혀 어색하지 않을 수 있다. 현재의 삶을 무너뜨려야만 더 나은 삶으로 나아갈 수 있는 주인공들의 모습이야 말로, 지금의 삶이 가지는 진짜 이야기는 아닐 지 모르겠다.
구약 성서를 보면, 사람들은 바벨탑을 쌓아 자신들이 신의 영역에 도달하려는 시도를 했었다. 결과는 신의 노함으로 큰 벌을 받게 된다. 현재의 삶이 가지는 험악한 모습들, 그리고 지금의 상황을 벗어나야만 살 수 있는 주인공들의 이야기. <레버너스>의 이야기는 생각 없이 보기에는 너무 많은 질문들을 던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생각의 집중이 영화의 감상을 방해하지 않는다는 점은 다행이 아닐 수 없다.
때때로 던지는 웃음의 상황(물론 아재 개그지만)들 속에 공포의 기법을 버무리는 <레버너스>의 연출은 분명 나쁘지 않은 결과가 있었다. IMDb 평점은 6.6점, 로튼 토마토 지수는 88%(신선 7, 진부 1)로 높은 점수를 보여준다. 다만 영화가 가지는 상황들이 다양한 질문을 남긴다는 점은 약간의 주의를 요한다.
레 애팸스 (Ravenous, 2017)
▥ 추천 : 지금의 상황이 만들어낸 공포의 순간들.
▥ 비추천 : 생각 없이 보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없음
※ 예고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