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문 입술 (Inspection Of The Memory, 2010)
이요섭 감독의 80년대 회상 2번 째 이야기.
이 작품은 <그의 인상>, <다문 입술>, <얼룩진 방>으로 흘러가는 80년대 단편 3부작 시리즈로서, 진실이 진실이 아닌 당시의 암울함은 우울하게 스케치하고 있는 작품이다. 전작 <그의 인상>에서는 '몽타주'라는 소재를 통해 진실이 필요없는 사회의 단면을 그렸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그 다음이야기 '현장 검증'을 통해서 그때의 이야기를 이어가고 있다.
주인공 용의자는 여관방에서 피해자를 감금, 폭행치사에 이르게 한 혐의로 현장에서 검거되었다. 그리고 그를 체포한 오형사와 김형사. 영화의 배경에는 88올림픽 100m 육상경주 벤존슨-칼 루이스의 희대의 경기를 깔아두며 그것이 제 5공화국(정확히는 노태우 정권임으로 6공화국의 시작) 끝자락의 이야기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현장검증을 하기 전 밖의 상황. 살인사건임에도 경찰들이 탄 차량의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밝기만하다. 마네킹에 피해자라는 글씨를 새기는 사람만이 뭔가에 집중하는 척을 할 뿐, 나머지는 벤존슨과 칼 루이스의 경기에 내기를 걸며 시종일관 밝은 분위기다. 그리고 시작된 현장검증. 방 안의 분위기 역시 뭔가 어수선하다. 오직 용의자만이 굳은 입술을 깨물며, 비장한 척을 할 뿐이다. 그리고 검증이 진행 될수록 뭔가 코믹하게 펼쳐지는 상황들. '그럼 내가 하리'라는 80년대의 유행어부터 마네킨을 대신하는 김형사의 몸짓까지 경찰들의 몸짓은 우스꽝스럽기만 하다. '블랙 코미디' 이쯤에서 이요섭 감독은 전작처럼 시대의 암울함을 당대의 공권력을 희화시키는 작업으로 풍자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일 뿐. 그 뒤로 이어지는 상황은 이 이야기가 단순 블랙 코미디만은 아님을 말해준다. 밝혀지는 비밀들. 그리고 자신이 범인이라 주장하는 용의자. 그리고 그 역시 피해자라는 설득력 있는 주장에 관객들은 그제야 피해자는 그 시대를 살아갔던 소시민들임을 알게된다. 때문에 <다문 입술> 속에는 가해자란 없고, 모두 피해자만 있을 뿐이다. 사건을 조작하는 형사도, 사명감에 불타는 용의자도, 그리고 침대 위에 누워있는 피해자도 이야기 속의 상황에서는 모두 피해자다. 모두들 자신과는 상관없이 당대의 이념이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으리라 생각하니 그들 역시 피해자가 되고, 피해자 역시 이념에 당했을 뿐이다.
▲ 현장검증을 준비하는 형사들. 차 안에서는 내기가 한창이다.
마치며...
마지막 장면.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되는 용의자의 모습에는 그토록 바라던 자유에 대한 염원을 이뤄웠다기 보다는 암울함이 남아있다. 무엇때문에 자신이 그 자리에 있는 것이며, 피해자는 또 무엇때문에 죽었는지. 원래대로라면 스포트라이트에 대고, '독재에 대한 항거'를 외쳤어야 마땅하겠지만, 그의 입술이 굳게 다문 것도 그와 무관하지 않으리라.
이 영화의 다음편인 <얼룩진 방>은 이요섭 감독에게 전해받지 못했기에, 감독의 단편리뷰는 여기서 마쳐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요섭 감독이 속한 창착그룹 '광화문 시네마'에서는 다음 작품으로 작은 독립영화를 겨울에 크링크 인 할 예정이라 밝혔다. (이메일로 연락) 최근 좋은 행보를 보이고 있는 그들이기에, 다음 작품도 조심스레 기대해본다. :")
▲ 그에게 미치는 스포트라이트, 하지만 할 말을 잃은 그의 음성
▥ 추천 : 80년대의 암울한 자화상
▥ 비추천 : ...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없음
※ 다문 입술 비메오 링크 (https://vimeo.com/37641332)
inspection of the memory from leeyosup on Vime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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