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영화를 찍으랬더니, 신파극을 찍고 앉아 있다.
<판도라>는 알려진 바대로 2013년에 일어난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모티프로 하여, 한국의 고리 원자력 발전를 모델로 하여 그려진 작품이다. '세계 원자력 발전소 밀집도 1위'라는 걱정을 안고 있는 나라. “전세계에서 원전이 6기 이상 몰려 있는 단지 중에서 주변에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는 곳”이라는 그린피스의 발표내용. 더구나 “부산, 울산, 경주가 위치한 한반도 동남부 지역에는 무려 60여개의 활성단층이 위치해 있다. 지진을 일으킬 수 있는 활성단층이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분포한 곳에 원전을 추가로 짓는 것은 위험한 결정”이라고 그린피스는 경고하고 있음에도 정부는 이 지역에 2개(현재 8기 → 10기로 증설 예정)의 원전을 더 건설할 예정이라고 한다.
영화 <판도라>는 이러한 안전 불감증이 불러올 수 있는 최악의 상황에 관해서 이야기를 한다. 낙후된 원전. 하지만 수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중요한 연료봉들은 시멘트 한 장으로 그냥 방치된 채 운영을 계속하고 있다. 계속되는 발전소장의 경고와 요구에도 불구하고 운영비를 이유로 그의 요구를 빈번히 묵살하는 상부. 영화는 그러던 중 발전소가 폭발하는 재난을 맞게 되면서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상부와 정부는 사건이 일어나자 해당정보를 차단하는 급급하고, 급기야 대통령까지 꼭두각시로 삼으며 문제의 해결보다는 자신들의 안위를 지키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그 와중에 사람들의 피해는 점점 더 늘어만 간다.
"문제를 이야기 할 때는 관심도 없다. 문제가 터지고 나니깐, 그제야 우리보고 죽으라고 한다."는 재혁의 울분 섞인 대사는 현 정부의 무능함과 오버렙이 되며 관객들의 마음을 극 속으로 빨아들이게 된다. 여기에 발전소장 평섭이 맞는 말을 하고 있음에도 자신들의 이익을 계산하고 있는 원피아(각주)들로 인해 피해가 커져만 가는 상황은 관객들의 울분을 사기에 충분해 보인다. 때문에 관객들은 영화 속 무능한 정부의 모습과 일선에서 정부가 해야할 일들을 스스로 처리해야만 하는 국민들의 모습에 영화가 던지는 이야기를 공감하게 되는 것이다. 즉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관객들의 쌓였던 울분을 움직이게 된 것이라 볼 수 있는 것이다. 1
이렇게 관료들의 잇속 챙기기 속에서 희생되는 극중 인물들의 모습에서 우리들의 억울함을 찾을 수 있기에 우리는 <판도라>가 보여주는 이야기에 더더욱 공감을 하게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 원전폭발사고로 도망치려는 근로자들
다만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에는 충분한 공감을 이루고 있는 것에 비해서, 영화가 조성하는 재난영화로서의 모습에는 큰 실망감이 앞선다. 즉 드라마는 인정하지만, 스릴러는 공감 할 수 없는 것이다. 재난 영화의 기본이라 할 수 있는 긴장감을 조성하는 방법은 너무 앞이 훤히 보인다. 발전소에 사고가 일어나게 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의 피해. 여기에 주인공 지혁의 모습이 끼어있는 것이 만들어낼 이야기의 모습은 너무도 뻔했고,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박정우 감독의 전작 <연가시 (2012)>의 흐름과 많이 닮아있다. 즉 원전판 <연가시>의 모습을 보는 듯한 착각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중요한 연가시를 닮았네가 아니라, 영화가 보여주는 스릴러의 흐름이 특별할 것 없기에 여기서 파생되는 긴장감 역시 특별함이 없는 밋밋함을 안겨준다.
더구나 영화는 스릴러를 보여줘야 할 장면에 모든 흐름이 재혁에게로 흘러가도록 장치를 하는 좌충수를 두고 있다는 점은 이러한 아쉬움을 더욱 크게 만들고 있다. 재혁이 주인공이기에 관삼이 집중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쳐도, 그가 폭파 전문가라는 사실로 이어지는 과정이 극적 상황을 만들기 위해서 '재혁 몰아주기'를 하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이다. 재혁은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또 모든 것을 해야만 하고, 그것이 만들 감동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이 왠지 불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영화가 만드는 이야기가 결국 감동에 매달리고 있다는 점에서 그러한 아쉬움은 더욱 커진다. 즉 재난 영화라기 보다는 재혁의 영화. 즉 재혁의 감동 스토리와 눈물 눈물 열매 파티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특히나 재혁의 마지막 순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여 눈물샘을 자극한 것이 뭇 관객들의 눈물을 훔쳤을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의 완성도에는 어떠한 도움이 되는 지는 의문이 든다.
하지만 판도라의 이야기를 단지 영화로만 판단 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러한 점은 아이러니한 괴리를 만들어낸다. 영화로서는 아쉬움이 남지만, 메시지로서는 충분한 공감을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때문에 <판도라>를 영화 이상의 영화라고 판단한다면, 그들이 던지는 이야기에 충분한 공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 대피소를 빠져나와 북쪽으로 피신을 하는 재혁의 가족들
마치며...
<판도라>가 던지는 신랄한 비판은 어찌보면 조금 진부한 감이 없지는 않다. 무능한 정부와 잇속을 챙기는 관피아의 모습은 너무도 흔하기에 그것이 만드는 이야기도 진부하게 느껴질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무능한 상황과 영화가 보여주는 무능한 상황이 놀랍도록 닮았다는 것은 이야기에 100%의 공감을 연결시키고 만다. 즉 이야기 속 인물들의 피해가 곧 우리의 피해고, 우리의 아픔처럼 느껴지기에 영화의 메시지는 놀랍도록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해 보인다.
다만 영화의 스릴러를 감동을 위장한 것은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관객들의 감성에 호소하는 스타일은 잠깐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영화를 지루하게 만들었고, 재난이라는 상황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영화의 연출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더구나 지진, 원자력 발전소의 폭발, 그리고 그것이 만드는 위기라는 소재가 불러올 긴장감은 얼마든지 많기에, 이러한 감동스토리는 감동보다는 아쉬움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그들이 던지는 위험에 대한 경고는 지금의 우리들에게 영화로만 느껴질 수 없기에 그것만으로 <판도라>가 가지는 의의와 봐야할 이유는 분명하다 할 수 있겠다.
▲ 평섭과 대원들은 발전소의 2차 폭발을 막아낼 수 있을 것인가?
▥ 추천 : 100% 공감되는 메시지와 위험에 대한 경고!
▥ 비추천 : 재난을 찍으랬더니, 신파를 하고 난리다.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없음
※ 예고편
- 관료 + 마피아에서 파생된 단어로 한국수력원자력 공사의 관료들을 지칭하는 부정적 단어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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