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클라비스와 그의 팀원들. 애니메이션의 작화는 포스터와는 살짝 다르다.
요절한 천재 SF 작가 이토 케이카쿠의 첫 번째 장편 소설
이토 케이카쿠는 <죽은 자의 제국>을 함께 집필한 엔죠 토우와 함께 2000년 대 일본 SF의 부흥기를 이끌었던 인물로 평가 받는다. 불행히도 <학살기관>과 <세기말 하모니>, <죽은 자의 제국> 등 3편의 장편과, 다수의 단편 소설 만을 남기고 떠났기에 더욱 안타까운 인물로 평가 받는 그의 작품들. 이번 작품은 그 중 그의 첫 번째 장편 소설이자, 마지막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으로 남게 될 것 같다.
이번 작품은 그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가까운 미래. 사회에 의해 통제 받는 인간들의 삶의 이면을 건드리게 된다. 911 테러 후 인간들은 자신들의 자유를 포기하는 대신 완벽에 가까운 치안 상태를 손에 넣는데 성공한다. '개인정보 관리에 의한 보안 장치'라 불리는 통제 장치의 완성. 그 덕분인지 선진국을 향하던 테러의 움직임은 자신들을 노렸고, 개발도상국들은 내전으로 학살의 폭풍을 맞게 된다. <학살기관>은 이처럼 학살의 폭풍을 맞게 된 국가의 이면에 존 폴이라는 인물이 있었고, 특수 부대원인 클라비스와 그의 부대가 존 폴을 쫓게 된다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이 작품에 앞서 애니메이션화가 되었던 <죽은 자의 제국>에 비한다면 <학살기관>의 이야기는 굉장히 잘 짜여져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현학적이고 철학적인 질문들은 존 폴을 향하게 되며, 이야기가 짜 놓은 틀은 세계 각국에 일어나는 학살의 원흉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들로 귀결된다. 그러면서 각각의 이야기들 속해 크고 작은 질문들을 던져 놓는 이야기는,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정당한 것인가에 질문으로 연결되며 거국적인 물음표의 끝을 완성 시키게 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이 이야기는 굉장히 현학적인 문구들로 가득 차 있다. 더구나 대사 한 줄 한 줄이 문학적 표현들까지 담고 있기에 대사 하나 하나를 곱씹어 보지 않는다면 이야기가 던지는 내용을 오롯이 파악하기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 다만 뒤에 가서 밝혀지는 이야기들은 앞선 질문들을 모두 포괄해서 설명하기 때문에 난해한 듯한 이야기도 해답지를 열 듯 쉽게 해결된다는 시원함도 함께 한다.
이렇게 복잡한 설명들 뒤에 숨어있던 해답들이 결국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에 대한 근본적 질문들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굉장한 물음이 된다. 때문에 위에서 설명하고 해답지는 또다른 질문지가 된다는 점에서 이야기는 돌고 돌아 또 다시 네버엔딩의 질문으로 귀결되고 만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결국에는 자신이 숨겨 놓은 마지막 미제에 대한 질문을 던지기 위한 서막이었다는 점은 이 이야기가 얼마나 대단하게 짜여져 있는가를 잘 알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이러한 궁극적인 질문이 아니더라도, 이야기를 이끄는 장치들은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상업적인 재미로 접근해도 괜찮은 선택이 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궁극적 질문까지 닿는다면 더 재미있어지는 것은 말 할 필요도 없다.
▲ 존 폴을 잡기 위해 출동한 클라비스의 팀
마치며...
<죽은 자의 제국>이 조금은 아쉬운 진행을 보여줬던 것에 반하여 <학살기관>의 이야기는 완벽에 가까운 진행을 보여준다. 비록 극적인 장면이 연출 되는 순간에서는 작위성이 지배한다는 점에서 아쉬움도 남지만, 거국적인 이야기를 건드리는 대부분의 부분들은 짤 짜여진 한 편의 스릴러를 완성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된다. 더구나 마지막에 쉬운 듯 했던 질문지가 궁극적인 질문으로 연결된 점 역시 작가의 못된 진행(?)을 보는 것만 같아 더욱 기쁘게 느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던지는 현학적인 대사와 문학적 표현들은 조금은 접근하기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점은 같은 언어를 쓴다고 해도 범접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에서 어쩔 수 없는 한계로 남게 된다. 이러한 점들이 <학살기관>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지만, 영화 자체가 건드리고 있는 스릴러는 나쁘지 않았다는 점에서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시는 관객들이라면 한 번쯤 도전해 볼 만한 애니메이션이 아닌가 싶다.
여담으로 애니메이션 속 등장하는 체코의 모습은 프라하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고 있다. 프라하에서 잠시 동안 살아 본 감자의 눈에는 프라하 성 주변의 모습과 구시가지 광장 및 골목 구석 구석 등은 완벽에 가깝다. 비록 지하철의 모습만 살짝 다르지만, 프라하의 모습을 애니메이션을 통해 감상하는 것은 또 다른 재미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 존 폴의 비밀을 안고 청문회에 등장한 클라비스는 어떠한 대답을 내놓을 것인가?
▥ 추천 : 길고 길긴 여정이 만드는 거룩한 질문들.
▥ 비추천 : 지나치게 현학적인 대사들은 건드리기 불편할 수 있다.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없음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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