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영화의 묵직함에 빠질 뻔 했다.
<시선 사이>는 '시선'이라는 이름으로 꾸준히 제작/기획을 해온 '국가인권위원회' 지원의 작품시리즈다. 이번 작품에서는 각기 다른 시선으로 이루어져있는 세 가지 이야기를 옴니버스 스타일로 담아냈다.
먼저 첫번 째 이야기인 <우리에게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있다.>에서는 인간의 권리를 논할 때 많이 등장하는 것은 '빵'의 논리를 '떡볶이'라는 우화로 그려냈다. '빵'의 이야기를 이번에는 '떡볶이'에 대한 우화를 던짐으로써, 우리에게 인간이 가져야 할 기본적인 권리 즉 '기본권'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풀어낸다. 떡볶이를 좋아하는 소녀 지수는 본인들이 떡볶이를 먹을 권리가 제한됐다는 소식을 듣고는 망연자실하고 만다. 그리고는 이상한 행동을 취하는 지수. 소녀 지수는 자신이 자신 능력하에서 최선의 반항을 해보지만, 학교로 대변되는 선생님들은 그녀의 반항을 아랑곳하지 않는다. 급기야 최후의 수단을 선택하는 지수. 영화에서는 지수의 반항에 대해 선생님들은 '좀비'라 칭하며 소녀를 인간으로도 취급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영화에서는 이런식으로 기본권과 좀비-인간을 대입시켜, 기본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것임을 주장한다. 마지막장면 자신의 권리를 투쟁으로서 찾은 지수와 친구들의 모습에서 묘한 행복을 찾을 수 있는 것은 그러한 이야기의 연장선이자. 영화초반 지수가 자신의 행복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음을 주장한 것과 동일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 떡볶이를 좋아하는 소녀들
두번 째 이야기 <과대망상자(들)>은 <시선 사이>의 전체 이야기들 중 가장 묵직한 이야기를 던진다. 요즘의 시대상과도 부합되는 이야기는 조심스러우면서도 과감한 직구를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다. 모두가 통제당하는 상황. 우민의 아버지는 언론을 통제하는 집단에 의해 희생당했고, 그런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우민은 모든이들을 믿을 수 없다. 영화는 현대 사회가 당하고 있는 억울함. 그리고 그 억울함에 알게 모르게 희생당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를 조심스레 풀어낸다. 얼마전 '사이버 망명'이라 칭하며, 외국계 모바일 메신저로 많은 사람들이 옮겨간 것도 이러한 상황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대망상자(들>은 너무 많은 것을 건드린다. 이랬다가 저랬다가 왔다 갔다 하면서 바쁘게도 건드렸지만, 그것들을 한 데 섞는 실력은 부족했다. 때문에 이야기는 헌법 11조에 명시된 '언론, 출판 / 집회, 결사'의 자유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가도 이리 샜다가, 저리도 갔다가 결국 모든 것이 포괄된 통제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그 과정이 산만하기에 몰입이 안된다. 때문에 이야기는 정직하지만, 산만한 이야기들의 주장은 옳은 이야기임에도 불편하게 들린다.
세번 째 이야기 <소주와 아이스크림>은 판타지의 문법을 이용하여, 현대 사회가 가지고 있는 소외에 관해 이야기를 한다. 감자가 초등학교를 다닐 때 '핵 가족화'의 문제점을 배우면서 '먼 미래'에 인간소외가 이루어 질 수 있다고 도덕시간에 배웠었다. 하지만 멀다고 했던 미래는 너무도 빨리 찾아왔고, 우리는 대응방법도 배우지 못한 채로 미래에 돌입하고 말았다. 때문에 급격화된 인간소외 현상은 실제로 옆집의 사람들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이제는 사라진 단어가 되어버린 '이웃사촌' 역시 영화가 주장하는 이야기의 연장선상으로 들리고 있다.
<소주와 아이스크림>은 <우리에게 떡볶이...>처럼 유쾌하게 질문을 던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아주머니와 세아의 통화. 거기에 파생되는 다음이야기들은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설득력을 갖기에는 충분해보인다. 때문에 세번 째 이야기 던지는 질문은 깊은 고찰이 되어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게 다가온다.
▲ 모든 것이 통제당하고 감시당하는 시대상을 풍자하고 있는 <과대망상자(들)>
마치며...
<시선 사이>의 주체가 '국가인권위'인 것을 감안하면, 이야기의 메시지는 나름 정직했던 것으로 보인다. 혹은 눈치채지 못 할 만큼의 고도의 위장술을 썼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각기의 이야기들의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는 않다. 그럼에도 억지로 망가트리려한 시대정신의 문제점들은 불편하게 다가오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블랙 코미디'가 세련되지는 못했지만, 나름의 메시지로 다가오게 되는 것이다.
이야기의 첫번 째 질문은 꽤나 마음에 들었다. 소녀들이 던지는 기본권의 외침도 '어디서 많이 읽던' 스타일이지만, 진부함을 잘 가려준 것 같다. 하지만 두번 째 이야기는 현학적이고 산만하게 다가왔다는 점, 세번 째 이야기는 묵직한 돌직구를 던지면서도 매끄러운 연출이 부족했다는 점에서 각각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던지고자 하는 질문들이 잘 와닿았기에 불편하지는 않았다.
▲ 언니를 찾아간 곳에서 만난 아주머니와의 우연한 인연에 관한 이야기 <소주와 아이스크림>
▥ 추천 : 이야기의 질문들은 우리가 생각해보고, 생각해봐야 할 점이라는 점에서 마음에 든다.
▥ 비추천 : 읽어버린 세련됨. 어디서 불쑥 튀어나오는 현학적 가르침의 불편함.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없음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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