멋지고, 아름답고, 섬세하다.
<엘르>, 프랑스어로 '그녀 (Elle)'라는 뜻의 이 영화는 거장 폴 버호벤이 처음으로 만든 프랑스어 영화다. 원래는 니콜 키드먼, 케이트 블란쳇, 케이트 윈슬렛, 줄리안 무어, 샤론 스톤 등이 물망에 오르며 미국에서 제작되려 했으나, 여배우들의 고사로 인해서 영화는 이자벨 위페르와 불어로 제작되게 된다. 동시에 이러한 선택은 영화의 질이 더욱 섬세하게 변화하는데 일조를 하게된다. 프랑스어와 분위기가 주는 예술성은 영화의 분위기와 일체했고, 덕분에 영화는 한 단계 더 성숙해진 모습으로 우리곁에 찾아올 수 있었다.
이 영화는 프랑스 작가 필립 지안(Philippe Djian - 영어 위키백과)이 쓴 소설 'Oh...'를 원작으로 한다. 혹자는 원작을 형편없이 사용했다며 폴 버호벤에 대해 혹평을 하기도 하지만, 탄탄한 원작은 거장의 손에 의해서 새로운 생명력을 부여 받았고, <엘르>의 이야기는 더욱 매력적으로 변한 것이라고 감자는 생각하고 있다.
영화의 시작은 한 여인(미셸)이 복면을 쓴 괴한에게 겁탈을 당하는 장면으로 출발한다. 시작부터 강렬한 인상을 준 영화는 다음 화면, 거품 목욕을 하는 미셸의 몸에서 붉은 색 피가 나는 장면을 보여주는 영화. 미셸은 하얀 거품 위로 뜬 빨간 피를 감싸안으며 복잡한 표정을 짓고 있다. 한 여인의 상처. 강렬한 색상대비. 그것은 그녀의 겁탈을 의미할지도 모르지만, 뒤로 흘러가는 영화의 상황은 미셸의 상처가 몸에 난 것 보다 더 깊은 곳에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리곤 경찰을 불신한다는 그녀. 그리고 그녀 아버지에 대한 비밀은 그녀의 상처가 무엇에 기인하고 있는지를 어렴풋히 설명하고 있는 듯도 하다.
▲ 겁탈을 당한 후 자신을 지킬 호신용 무기를 구입하는 미셸
영화는 이렇듯 미셸 자신이 가진 문제점들을 한 없이 늘어놓기 시작한다. 그녀의 겁탈, 아들의 결혼, 젊은 남자와 살림을 하겠다는 어머니의 폭탄 선언, 그리고 자신의 불륜과 앞 집 유부남에게 품는 자신의 연정 등. 모든 것이 복잡하고도 이상하기만하다. 그러면서도 영화는 거기에 모든 것들을 관통하는 한 가지 속셈을 깔아놓는다. 자식은 부모를 닮는다고 했던가? 이야기는 또다시 그녀의 아버지 문제를 꺼내놓으며, 미셸과 부친과의 상관관계를 연결하려 애를 쓰는 것이다. 즉 그녀의 문제는 어린시절 무차별 살인을 일삼고,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아버지와 연관이 있으며, 그것으로 인해서 그녀 역시 못된 삶을 당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렇게 흘러가던 영화는 중반을 즈음해서 조금씩 실타래를 풀어놓기 시작한다. 밝혀지는 괴한의 정체. 그리고 자신의 음란 동영상을 유포한 자들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영화. 그렇게 마무리를 들어가는가 싶은 영화는 마무리를 대신해서 미셸이 괴한에게 연정을 품는 것으로 대신한다. 괴한은 사디스트적인 성적취향을 가지고 있었고, 그에게 맞음으로서 미셸 역시 자신의 죄책감을 속죄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머니의 죽음과 그녀의 유언을 계기로 아버지를 찾아가게 되는 미셸. 하지만 아버지 역시 그녀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미리 목숨을 끊어버린다.
드디어 자신을 얽메고 있던 나쁜 피를 끊게 되는 미셸. 그리고 영화는 드디어 대단원의 막을 내리려한다. 그와 함께 완성이 되는 게임. 여러분께서도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영화의 시작부분 게임의 영상 속 괴물에게 공격을 당하는 여인의 모습은 미셸 그 자체 였던 것이었고, 때문에 겁탈을 당하는 게임 속 케릭터도 그녀가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게임의 완성과 함께 미셸은 게임 속 괴물들을 드디어 정리하기로 마음을 먹게 되는 것이다.
▲ 앞 집의 유부남에게 호감을 갖는 미셸
마치며...
<엘르>는 프랑스 영화다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름다운 영화였다. 이자벨 위페르는 전작 <다가오는 것들>에서는 중년의 여인으로서 겪게되는 일들을 소소하고 잔잔한 문체로 우리에게 들려줬었다면, 이번 작품 <엘르>를 통해서는 한 여인이 겪고 있는 아픔과 문제점을 덮으며 정리하는 과정을 들려준다.
일부 가학적이고 폭력적인 섹스장면과 여러가지 문제점들은 자극적으로 비춰질 수는 있지만, 그러한 것들까지 영화의 내용과 완벽하게 매치시키는 폴 버호벤의 연출은 명장이라는 이름이 아깝지 않을만큼 정말 대단했다. 여기에 게임 속 상황과 영화의 내용을 유기적으로 매치시키는 이야기의 흐름. 즉 미셸의 삶의 완성은 게임의 완성되는 것처럼 복잡다단하게 만들어냈고, 그것을 풀어내는 과정 역시 게임이 클리어 되듯이 매끄럽게 풀어낸 점은 영화로서 완벽한 완성도를 지니는 것이 아닐까하고 조심스레 생각을 해본다.
이 영화는 어찌보면 불편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지만, 상황을 즐긴다는 느낌으로 감상하게 된다면 큰 재미로 다가올 것이다. 그리고 큰 틀에서 본다면, 상황이 막히고 열리는 과정이 매끄럽기 때문에 대단원이 주는 카타르시스 역시 느끼게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때문에 이 영화는 분명 대단한 영화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엘르>는 평점은 IMDb 평점 7.7점, 로튼 토마토 지수는 93% (신선 77, 진부 6)으로 매우 높은 점수를 받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 복잡하기만 한 그녀의 일상은 어떻게 될 것인가?
▥ 추천 : 명장이 만들어내는 명작의 이야기는 정말 놀라웠다.
▥ 비추천 : 이야기가 복잡하고,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는 점은 단점으로 다가온다.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 (음모 노출 및 겁탈, 전라 등 가학적이고 성적인 모습이 자주 등장)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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