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원적 은유와 결국은 남성시선의 여성판단에서 불편함을 느끼다.
1980년 대학가요제 은상 수상자인 샤프는 그들의 노래 '연극이 끝나고 난 뒤'에서 모두가 떠나버린 무대 위의 쓸쓸함을 담담한 어조로 노래한 적이 있었다. 그리고 이 영화 <안티포르노> 역시 어느 한 무대 위 여자들의 날선 비판을 통해 현 세태가 가지는 남성 중심의 사고를 희화와 풍자를 통해 연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영화는 한 유명한 대중문화 예술가의 이야기를 토대로 펼쳐진다. 장소는 그녀의 집. 온통 노란색으로 칠해진 벽들과 그림. 그리고 붉은색으로 물여진 화장실의 모습에서 그녀는 예술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그녀의 벌거벗은 몸매가 지나다니는 곳을 보고 있노라면, 어느새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비판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남자 작가, 남자 예술가, 남자 정치가는 없지만 여류 소설가, 여류 도예가, 여류 정치가는 있는 세상. 그녀는 그렇게 자신의 일을 통해서 지금의 사회가 구분하고 있는 차별적 구분에 일침을 가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자신들이 처한 입장에 관한 비틀기를 계속해서 이어가던 영화는 이번에는 작은 반전을 시도하게 된다. 그녀들이 서있는 곳은 바로 무대며, 그것을 지켜보는 대상이 남성들이라는 점. 즉 무대위 헐벗은 여성들을 관음하는 자가 바로 남성들이며, 이는 비뚤어진 성의 소비자들이 남성이라는 점을 꼬집게 된다. 이러한 점은 제목이 지니는 <안티포르노>와도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는데, 포르노의 개념을 부정한다는 극의 제목이야 말로 극 전체를 수용하는 스포일러이자 극을 관통하는 중심 소재가 되는 셈이다.
<안티포르노>는 여성들에게 주어진 편협한 사고에 관한 비판을 여기서 멈추지는 않는다. 무대의 존재가 드러나고, 비판의 대상과 비판의 목적을 선명하게 드러내기 시작한 영화의 모습에서 이번에는 여자 아이에게만 주어진 그릇된 성의 굴레를 비판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주인공 교코가 포르노 산업에 뛰어든 것과 비슷한 개념을 지게 되는데, 때문에 매춘부란 '순정이 지나쳐 몸이 부서질 듯 마음이 여린 여자'라 칭하는 것도 기존 '처녀와 매춘부'의 이분법에 목을 매는 기존의 문법들에게 반기를 들고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소노 시온의 이러한 사고 방식들이 과연 여자들의 입장에서 쓰여진 것일까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면, 감자는 약간의 의문이 남게 된다. 소비의 주체를 비판하면서도, 소비의 희생양으로 여자를 삼게되는 영화. 결국 영화 속 여자들을 또다시 소비하고 관음하는 자들 역시 남성들이며, 여성들이 모습이 또다시 남성들의 호기심을 채워주고 있다는 점은 논란의 불씨로 남을 것 같다. 물론 이러한 점들이 그들이 말하는 성의 자유이자, 표현의 자유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역시 남성들에게 반성보다는 호기심을 채워줄 지 모른다른 점에서 딜레마로 남을 것 같다.
여기에 소노 시온의 은유가 1차원적에 머물렀다는 점 역시 영화가 가진 의미를 퇴색케하는 단점이 된다. 여기에는 자신들의 메시지를 선명하게 부각시킨다라는 목적이 있겠지만, 동시에 소노 시온의 생각을 강요하게 된다는 점에서 분명한 아쉬움이 된다. 즉 영화는 수많은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은 우리의 몫임에도, <안티포르노>는 그러한 부분을 거세시키고 소노 시온 자신의 생각만을 주입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문제가 된다. 이러한 점은 위에서 등장한 소비의 주체를 비판하지만 또다시 소비의 주체를 양산하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비판과 일맥상통하게 되는데, 이미 주어진 답변을 주입하기 보다는 이정도의 은유는 해설지 없이 관객들에게 맡기는 편이 더욱 나아는지도 모르는 일이다.
▲ 자신의 메니져인 노리코를 학대하는 쿄코
마치며...
우리는 태어나서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포르노들을 접하게 된다. 여기에는 여자들은 포르노를 보지 않는다는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대부분의 주체는 남성이며, 때문에 남성 위주의 시장과 남성 위주의 성의식이 깔리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개념은 확대적으로 해석한다면 성문화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남성 위주의 사회를 비교할 수 있다. 때문에 여자니깐 안된다는 이상한 논리역시 이러한 바탕에서 출발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이러한 점에서 본다면 <안티포르노>의 이야기는 분명 바람직한 질문들을 관객들에게 던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남자가 여자를 많이 만나면 능력자고, 여자가 남자를 많이 만나면 '걸레'가 되는 이상한 논리에 소노시온은 일침을 가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긍정적인 입장을 대변하고는 있지만, 어쩐지 뒤가 구린 듯한 영화의 표현에는 아쉬움이 남게 된다. 여기에 1차원적인 은유와 결국은 남성의 시선에서 바라본 페니미즘일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반대편의 시선이 배제된 듯한 그의 문법에는 아쉬움이 등장하게 된다. 더구나 그의 전작들을 본다면 '팬티, 팬티'를 외치며 여성들을 상품화 한 전례가 있기에, 개과천선한 듯한 그의 회개에도 왠지 의심이 가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시선은 언제나 배가 고프다는 점에서, 아직은 우리가 가야할 길이 멂을 느끼게 된다. 때문에 당장은 이러한 문제를 공론화 시켰다는 점에서 <안티포르노>의 입장은 더욱더 필요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 구글 애드센스 정책에 따라 이미지는 삭제하였음을 밝힙니다.>
▥ 추천 : 남성 중심의 사회에 똥을 던지다.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여성 출연자들의 음모 및 전라 노출이 자주 등장)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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