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관된 내용의 흐름, 일관되지 못한 장르의 흐름
어느 날 귀가 중 터널에 갇히게 된 사내의 이야기. 하지만 당국의 무능력함은 사내의 목숨을 구하기는 커녕 오히려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다. 여기에 밖의 사람들은 사건을 하나의 이벤트성 구경거리로만 생각할 뿐이다. 이상의 내용은 영화 <터널>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재난 영화의 틀을 가지고는 있지만, 장르적으로는 블랙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다. 현시태의 어두운 면을 희회와 풍자를 통해 날선 비판을 가하는 장르인 블랙 코미디는 이번에는 당국의 안전 불감증에 관한 소재를 교묘히 꼬집는다.
유명 소설가인 소재원씨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이번 영화는 하정우라는 걸출한 배우를 만나 밀폐된 공간에서 펼쳐지는 극도의 불안감. 그리고 그와 반대편에 선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그러한 사건들이 일어나게 된 원인과 무능한 대처 등 복잡한 이야기들을 꼼꼼하게 짚어가며 날선비판의 화살을 돌리고 있다. <더 테러 라이브 (2013)>에 이어 또다시 원 탑(One top)이 중심이 된 극을 풀어나가는 하정우의 연기는 여기서도 빛을 발하고 있다. 런닝 타임의 절반을 혼자서 끌고 나가는 하정우의 연기가 아니였다면 영화 <터널>의 힘은 분명 반감 되었을 것이 분명하다. 여기에 119 상담대원의 메뉴얼 대로 읊는 대처. 당국의 생색내기용 정책. 그리고 현장의 부실 등은 보는 이의 가슴이 뚫릴 만큼 시원한 비판을 해주고 있다. 특히 '미국애들의 메뉴얼이 있는데 지금 번역 중이랍니다.'라는 안일한 대처에는 정말 공감가는 분들이 많을 만큼, 영화의 내용은 대체로 신랄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러나 영화의 일관된 내용과는 반대로 영화의 장르적 일관성을 따진다면 <터널>이 보여주는 극의 구성에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분명 블랙 코미디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된 희화와 풍자가 부족하다는 점은 아쉬운 대목이다. 곳곳에 당국의 무능함을 풍자해야 할 곳에서 정면 돌파를 통해서 날선 비판을 보여주는 모습은 분명 바람직한 고발이다. 하지만 그 외의 장면에서 오달수와 하정우 등이 펼치는 코믹한 장면은 코미디라는 장르를 가져온다는 점에서 앞의 고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는 의문이다.
즉 블랙 코미디로 희화와 풍자로 정치권의 무능함도 제대로 웃겨버렸다면 어땠을까하는 아쉬움이 남는 것이다. 물론 정치권들에 대한 블랙 코미디도 충분히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그 장면들이 제대로 희화되지 않는 점은 감독이 날선 비판이라는 시각을 완전히 내려놓지 못한 것이 아닐지는 의문이다. 정작 코미디는 '야 이 개새끼들아' 라는 멘트에 '내가 뭘?' 하는 김해숙의 멘트에서만 빛을 발한다는 것도 영화의 큰 아쉬움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아쉬움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영화는 비판과 코미디의 장르를 왔다 갔다 하더니, 뒤로 흘러갈수록 드라마의 감동을 녹여내려하고 있다. 앞에서 희화와 풍자를 하던 이야기가 갑자기 진지 모드로 돌아서는데, 기어가 갑자기 훅하고 바뀌는 느낌이라 사뭇 당황스러움을 자아내게 되는 것이다.
이런식으로 여러장르를 한 군데에서 시도는 하고 있지만, 각각의 장르가 제대로 섞이지 못한 점. 그리고 결국 감동 감동 열매로 귀결되는 점 등은 영화가 보여주는 가장 아쉬운 대목이다. 때문에 내용의 일관성은 보이고 있고 공감도 되지만, 장르적 일관성을 놓친 탓에 오히려 산만하고 메시지가 한 곳으로 뻗는 느낌이 부족하게 느껴진다.
마치며...
<터널>이 보여주는 블랙 코미디는 재미 없는 풍자였다. 첫 째로 재미가 있을 수 없는 소재(재미가 있으면 안되는)이기에 재미가 없고, 둘 째는 장르적 통일이 미흡하기에 재미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끔 해외에서 날 선 비판을 하는 영화들을 보게 되면 우리는 왜 이런 영화가 없고, 있어도 왜 흥행이 안될까 라는 고민을 여러 차레 한 적이 있었다. 때문에 비판과 흥행을 모두 잡은 <터널>같은 영화는 우리나라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장르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제대로 된 풍자와 그 원인(제대로 된)까지 짚어줬다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숙제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널>의 풍자는 대한민국에 반드시 있어야 할 존재라는 점에서 이 영화의 고발 정신에 박수를 보낸다.
▥ 추천 : 대한민국에 없어져야 할 장르지만, 지금은 꼭 필요한 정신.
▥ 비추천 : 누군가는 좌빨로만 인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좀 더 강한 설득이 있어야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없음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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