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산이 소리쳐 부르거든 - 산이 울다 (Mountain Cry,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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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의 줄거리 요약

  1984년 산악마을에 부부가 찾아든다. 말을 하지 못하는 아내(홍시아 - 량예팅)는 어린 두 딸과 무능한 남편을 따라 마을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렇게 부부가 마을을 찾은지도 6개월.


  마을의 청년 한총(왕쯔이)은 자신과 통정하고 있는 마을 과부 친화(진구오)에게 갖다 줄 오소리 덫을 매설하다가 홍시아의 남편을 죽이게 된다. 마을에서는 회의를 열어 사태를 고민해보지만, 촌장님이 중병에 걸린 상황에 또다른 문제거리를 만드는 것은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한총에게 홍시아 모녀를 책임 질 것을 명령한다.


  처음에는 차라리 자수가 낫겠다며 툴툴대던 한총도 홍시아를 챙기다보니, 어느덧 그녀에게 빠져들기 시작한다. 홍시아 역시 한총의 보살핌에 점점 마음을 열게된다. 그러던 중 과부는 자신과 통정하던 한총이 홍시아에게 빠진 것을 보고 질투를 하게된다. 마침 공안은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수배범을 찾고 있었고, 그 수배범이 홍시아의 남편이라는 것을 알게된 순간. 온 마을은 또다른 문제로 인해 홍시아를 마을에서 내쫓기로 모의하게 되는데...



▲ 말 못하는 여인 홍시아에게는 어떤 아픔이 감춰져 있을까?


2% 부족한 심금 울리기


  <산이 울다>, 정확히 함성(喊.山)은 산이 소리치다라는 의미를 가진 단어다. 하지만 부산 국제 영화제에 출품된 한국명 <산이 울다>는 한국 개봉명에 더 많은 의미가 담긴 듯 하다.


  얼마전 개봉한 <산하고인 (2015)>이 그랬듯, 최근의 중국 젊은 감독들은 그들의 과거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는데 주력하고 있는 것 같다. 이 영화 <산이 울다> 역시 그러한 선상에 서 있는 작품으로 보인다. 


  현재의 중국이 그들의 80년대를 조망하는데 주력하듯. 영화 역시 그들의 80년대 산골자기를 비춰주며 출발을 알린다.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거쉬핑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하는 영화는 어느 한 사내가 여인을 성적으로 폭행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얼마지나지 않아 그 사내의 죽음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빠른 호흡을 거칠게 내쉬기 시작한다. 그렇게 빠른 호흡을 내쉬던 영화는 사내를 매장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남편을 잃은 것이 슬픈 것이 아니냐'는 마을 사람들의 수근거림과 사내의 관을 향해 돌을 던지는 모습은 속사정을 모르는 이들에게는 진짜 그런 것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도한다. 하지만 우리는 이미 사내에 의해 학대를 당하는 여인의 모습을 봤기에 그들의 수근거림이 '오해'임을 금새 눈치채게 된다.



▲ 홍시아를 학대하는 라홍(여애뢰)에게는 어떠한 비밀이 있는 것일까?



  '오해'. <산이 울다>는 스릴러의 형태도 가지고 있다. 여인의 비밀에 숨겨져 있는 어떤 이야기가 밝혀지는 과정은 흡사 스릴러 장르의 그것을 연상케한다. 영화는 바로 이 '오해'가 가져온 이야기를 시작으로 여인의 비밀을 하나 둘 씩 벗겨지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의 공로에는 한총의 사랑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때문에 이 영화는 멜로/로맨스의 형태도 보여준다. 


  영화의 또다른 묘미는 광할한 미장센에도 있다. 두개의 굽이굽이 한 능선을 공중촬영으로 와이드하게 잡아내는 기법은 여인의 비밀에도 그 만큼의 오해와 비밀이 숨겨져있다는 것도 의미하는 것만 같다.


  그리고 그 가운데는 녹두밭을 일구며 이야기의 중심에 서 있는 한총의 모습도 관찰된다. 마치 장이머우의 감독의 <붉은 수수밭 (1988)>과 같은 젊은 거장들의 초창기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러나 거장들의 발자취와 비교하기에는 래리 양 감독의 섬세함이 아쉽다. 분명 한총과 홍시아의 감정선을 예쁘게 담아내는 성공한 것으로 보이나, 그 이상의 깊음이 없다는 것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사랑 만으로 런닝 타임을 채워나가기에는 어딘가 빈 곳이 느껴지는 연출도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저 예쁘기만 하다는 것 외에는 또다른 한 방이 아쉬워지는 대목이다.



▲ 실수로 라홍을 죽인 뒤 홍시아에게 빠지게 되는 한총


마치며...


  젊은 거장들의 통과의례처럼 비춰지는 '내것에 대한 고찰'은 어느 부분에서는 부러운 대목이다. 다앵한 문화에서 나오는 것들을 건드릴 수 있는 그들의 배경이 부럽고, 그 배경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용기가 부러워진다. 특히 시대가 흘러가면 당연하다는 듯이 새로운 거장 꿈나무들이 자라나고 있다는 것은 그러한 부러움이 질투로 바뀌는 순간이다.


  <산이 울다>의 마지막 장면은 홍시아가 양은대야를 마구 두드리는 것으로 대단원을 마무리한다. 그때 우리는 음소거가 된 장면임에도, '어떤 소리'를 느끼게 되는 신기함과 마주하게된다. 그 신기함의 끝에는 홍시아의 소리가 담겨져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홍시아가 대야를 두드릴 때의 표정을 본다면 그러한 예측에는 어느정도의 힘이 실린다. 우리는 그녀의 기억을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서 그녀가 청각장애인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녀가 소리를 찾은 그 과정이 누구와 함께였는지도 알고 있다. 때문에 이 영화에서 '예쁨'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예쁨'은 '예쁨'밖에 안 보인다는 단점이 되기도 하지만, '예쁨'을 잘 그려낸 장점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 양철 대야를 두드리는 홍시아에게 아픔을 극복된 것일가?



▥ 추천 : 량예팅의 실제 모습보다 홍시아 케릭터가 더 예쁘더라.

▥ 비추천 : 거장 꿈나무의 꿈은 아직 멀었다.



★ 감자평점 (5개 만점)

- 스토리 : ★★

- 노출 : 없음



※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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